이번 [레이스 픽션] 컬렉션을 준비하는 동안,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.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이었을 거예요. 다정하고 친구처럼 저와 잘 놀아주던 삼촌이 어느 날, 백화점에 저를 데려갔습니다. 아마도 큰 마음을 먹고 예쁜 옷을 사주려 했던 것 같아요. 그리고 어린이 옷 코너에서 가장 화려하고 새하얀, 풍성한 레이스 원피스를 골랐습니다. 저는 싫다고 난리를 쳤지만, 선머슴 같던 저를 ‘소녀’(ㅎㅎ)로 만들어보겠다는 삼촌의 의지를 꺾기엔 역부족이었죠. 누가 봐도 공주님 같은 그 원피스를 선물받았던 그때의 당혹스러움이 아직도 또렷합니다. 그걸 입고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,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도요. 그 시절 저는 레이스는 물론 하트, 꽃, 별처럼 반짝이고 사랑스러운 모든 것들을 극도로 싫어했어요. 이유는 참 여러 가지였겠지만, 어쩌면 그 안엔 소녀다움과 여성성을 거부하던 비뚤어진 자의식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.그래서 이번 [레이스 픽션]은 어쩌면 어린 시절의 저에게 전하는 작은 선물과도 같은 컬렉션입니다.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을, 이제는 조금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.